책속의 요리 레시피로
세상을 음미하자!
연합뉴스 기사다(2017.2.18)
『울산의 일부 신축 아파트가 아파트 품격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며 젊은 '훈남 경비원'을 구하느라 열을 올리고 있다.최근 분양한 울산의 한 아파트는 입주자대표회의에서 보안업무를 맡을 경비원으로 '비교적 젊고 보기에 괜찮은' 사람을 채용하기로 결정했다.아파트의 얼굴인 경비실에서 젊은 경비원이 입주민이나 손님을 맞으면 아파트의 품격이 올라갈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고급식당에는 여러 사람이 좋은 옷 입고 와서 식사와 사교를 겸해서 먹지만, 김밥이나 라면을 파는 식당의 손님은 대부분이 지나가다가 배고파서 들어온 사람들이다. 혼자서 온 사람은 거리 쪽을 바라 보면서 혼자 먹는 1인용 자리에 앉지만 1인용 자리가 없을 때는 2인용, 또는 4인용 테이블에서 모르는 사람과 마주 앉아서 먹어야 한다. 모르는 사람과 마주앉아서 김밥으로 점심을 먹는 일은 쓸쓸하다. 쓸쓸해하는 나의 종재가 내 앞에서 라면을 먹는 사내를 쓸쓸하게 해주었을 일을 생각하면 더욱 쓸쓸하다. 쓸쓸한 것이 김밥과 함께 목구멍을 넘어 간다. 나는 김밥을 먹고, 그는 라면을 먹는다. 나의 단무지와 그의 단무지는 똑같이 생겼지만 따로따로여서 나는 나의 단무지를 먹고 그는 그의 단무지를 집어 먹는데, 내 앞에 앉은 이 사내는 이 사람인지 저 사람인지 그 사람인지, 그 어느 누구도 아닌지 알 수 없다. 그는 그 어느 누구도 아닌 존재이지만, 내가 김밥을 먹고 그가 라면을 먹을때, 나는 덩달아서 라면이 먹고 싶어진다. TV광고에서, 라면 국물을 쭉 들이킨 연기자가, 아, 하면서 열반에 든 표정을 지을 때노 나는 갑자기 라면이 먹고 싶어 진다.
추위와 시장기는 서로를 충동질해서 결핍의 고통을 극대화한다. 추운 거리에서 혼자 점심을 먹게 될 때는 아무래도 김밥보다는 라면을 선택하게 된다. 짙은 김 속에 얼굴을 들이밀고 뜨거운 국물을 마시면, 콱 쏘는 조미료의 기운이 목구멍을 따라가며 전율을 일으키고, 추위에 꼬인 창자가 녹는다.
소설가 이문열은 그의 소설 변경에서 60년대 초의 라면 맛에 다음과 같이 경의를 표하고 있다.
노랗고 자잘한 기름기로 덮인 국물에 곱슬곱슬한 면발이 담겨 잇었는데, 그 가운데 깨어 넣은 생계란이 또 예사 아닌 영양과 품위를 보증 하였다.(...)철은 갑작스레 살아나는 식욕으로, 그러나 아주 공손하게 라면을 먹기 시작했다.그때의 주관적인 느낌으로는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맛난 음식을 먹고 있는 듯 했다.
- 이문영, 변경 7건, 문학과 지성사, 1998,177쪽
등장 인물이 생애의 첫 라면을 공손하게 먹엇다는 표현은 의미심장하다. 그때 라면맛은 그후에 닥쳐올 산업화시대 전체 삶의 맛이었다. 사람들이 결국 그 맛에 인이 박이고 거기에 주눅들려 살아가게 되리라는 예감을 그 공손하게라는 네 글자는 함축하고 있다.
사실, 이글은 오랜 세월 동안 라면을 끓이고 또 먹어온 나의 라면 조리법을 소개하려고 시작 했는데, 도입부가 좀 길어졌다. 이제 부터가 본론이다. 라면 포장지에는 끓는 물에 면과 분말수프를 넣고 나서 4분30초정도 더 끓이라고 적혀 있지만, 나는 센불로 3분 이내에 끓여 낸다. 가정에서 쓰는 도시가스로는 어렵고, 야외용 휘발유 버너의 불꽃을 최대한으로 크게 해서 끓이면 면발이 붇지 않고 탱탱한 탄력을 유지한다. 면이 불으면, 국물이 투박하고 걸쭉해져서 면뿐 아니라 국물까지 망친다. 그러나 실내에서 휘발유 버너를 쓰는 일은 위험해서, 나를 따라 하면 안 된다. 또 물은 550ml(3컵)정도를 끓이라고 포장지에 적혀 있지만, 나는 700ml(4컵)정도를 끓인다. 물이 넉넉해야 라면이 편안하게 끓는다. 수영장이 넓어야 헤엄치기 편한 것과 같다. 라면이 끓을 때, 면발이 서로 엉키지 않아야 하는데, 물이 넉넉하고 화산 터지듯 펄펄 끓어야 면발이 깊이, 또 삽시간에 익는다. 익으면서 망가지지않는다.
라면을 끓일 때, 가장 중요한 점은 국물과 면의 조화를 이루는 일이다. 이것은 쉽지 않다. 라면 국물은 반 이상은 남기게 돼 있다. 그러나 그 국물이 면에 스며들어 맛을 결정한다. 국물의 맛은 면에 스며들어야 하고, 면의 밀가루맛은 국물 속으로 배어나오지 않아야 한다. 이것은 고난도 기술이다. 센 불을 쓰면, 대체로 실패하지 않는다. 식성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나는 분말수프를 3분의 2만 넣는다.
나는 라면을 조리 할때 대파를 기본으로 삼고, 분말수프를 보조로 삼는다.대파는 검지 손가락만한 것 10개 정도를 하얀 밑동만을 잘라서 세로로 길게 쪼개놓았다가 라면이 2분쯤 끓었을 때 넣는다. 처음부터 대파를 넣고 끓이면 파가 곯고 풀어져서 먹을 수가 없이 된다. 파를 넣은 다음에는 긴 나무젓가락으로 라면을 한 번 휘젓고 빨리 뚜껑을 덮어서 1분~1분30초쯤 더 끓인다. 파는 라면 국물에 천연의 단맛과 청량감을 불어 넣어주고 그 맛을 면에 스미게 한다. 파가 우러난 국물은 달고도 쌉쌀하다. 파는 라면 맛의 공업적 질감을 순화 시킨다.
그 다음에 달걀을 넣는다. 달걀은 미리 깨서 흰자와 노른자를 석어 놓아야 한다. 불을 끄고, 끓기가 잦아들고 난 뒤에 달걀을 넣어야 한다. 긇을 때 달걀을 넣으면 달걀이 굳어져서 국물과 섞이지 않고 겉돈다. 달걀을 넣은 다음에 젓가락으로 저으면 달걀이 반쯤 익은 상태에서 국물 속으로 스민다. 파가 우러난 국물에 달걀이 스며들면 파의 서늘한 청량감이 달걀의 부드러움과 섞여서, 라면은 인간 가까이 다가와 덜 쓸쓸하게 먹을 만하고 견딜 만한 음식이 된다.
- 라면을 끓이며 김훈 중에서
세상에 만난 음식이 넘쳐나는 요즘, 심지어는 일본 도쿄에 로봇이 만든 레시피로 요리까지 하는 레스토랑이 인기여서 예약을 해도 맛보기 힘들다는 세상이 되었지만, 음식은 맛으로 먹기도 하지만 추억을 먹으며, 만들고, 같은 공간에 같은 시절에서도 ,각각 개인들의 기억 속에서 나만의 레시피로 재 생산된다. 같은 음식이라도 추억 속에서 상상과 연감으로 다른 요리들을 떠올린다. 아니 음식들을 마주하고도 그때의 그 공간이 우리의 머릿 속에만 남아 있는 추억의 공간 서랍에 보관된 맛으로 입이 아닌 머리로 음미하는 맛이 새록새록 쌓여간다. 젊음은 특권이 아니듯 노화도 죄는 아니다.
'책속의 요리레시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상이 개떡 같아 보일때 먹는 콩나물해장국 ! 딸에게 주시는 레시피 중에서,공지영 (0) | 2017.02.16 |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