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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트! 책으로 보는 트랜드

원초적 본능, 트랜드코리아 2017

by 오아재 2017. 3. 6.

뭣이 중헌디, 뭣이 중헌지도 모름서

짤막한 전랃고 사투리 한마디를 대유행시킨 한국영화 <곡성>은 새로운 오컬트(신비적, 초자연적 현상)무빙의 지평을 열며 700만명에 달하는 관객을 모으는데 성공했다. 무당,악귀,좀비 등을 뒤섞어 상황을 극단으로 밀어붙이고 결국 파멸해가는 잔혹한 이야기가 스크린을 압도한 것이다. 2016년에는 <아가씨><데드풀> 등 이른바 청불 영화들의 약진도 눈에 띄었다. 과거 흥행범위를 갖던 청불영화들이 이처럼 큰 인기를 끌게 된 것을 영화계에서는 이례적인 현상으로 받아 들이고 있다.


이처럼 2016년의 대한민국은 사람들의 원초적 감각을 자극하는 극도의 잔인함과 선정성으로 무장한 콘텐츠가 큰 인기를  끌었고, 싼티 나고 유치하지만 위트있는 B급 감성이 의외의 즐거움을 선사했다. 답답한 속을 시원하게 뚫어 주는 사이다 같이 시원한 직설화법이 출판, 문화계에서 주목 받았으며 뻔뻔할 정도로 어울리지 않는 것들을 의도적으로 함께 배치 함으로써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식품업계와 광고업계으 변화도 인상 깊다. 감수성을 건드리거나 감동을 끌어내기보다 대놓고 메시지를 전하고 직접적으로 본능을 자극하는 분위기가 업계 전반에 퍼진 것이다.


이 같은 자극의 홍수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선 고상한 체 하기 보다는 낯 뜨거운 정도의 솔직함이, 세련됨보다는 극단적인 촌스러움이, 어색한 부조화와 하드코어적인 극단성이 더 효과적인 전략이 될 수 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원초적이고 본능적인 성향을 건드림으로써 상시적 긴장 상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감각을 잠시 나마 이완 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2016년 패션업계에서는 유독 싼티가 인기를 얻었다. 바로 옷에 화려한 자수가 돋보이는 스카잔이라는 패션이다. 스카잔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일본에 주둔하던 미군들이 귀대 기념으로 항공점퍼에 일본식 자수를 놓으면서 유래된 패션을 일컫는데, 주로 불량배나 깡패를 상징하는 패션으로 통용됐다. 그런데 이 마이너한 스타일을 럭셔리 패션 브랜드에서 차용한 것이다. 루이비통이 2016년 봄, 여름 남성복 컬렉션에서 스카잔스타일을 선보인데 이어, 돌체엔 가바나, 발렌티노, 디젤, 스텔라 매카트니와 같은 디자이너 브랜드에서도 스카잔 패션을 런웨이에 올렸다.


책표지,간판, 광고등에 사용되는 활자도 촌스러움을 선택 했다. 1960~70년대 간판이나 포스터에 나왔을 법한 옛날 글씨체가 신제품디자인에는 물론 최첨단 모바일 애플리 케이션에 까지 사용됐다. 탄산주로 인기를 끌고 있는 부라더소다는 제품명을 표기할때 특유의 촌스러운 폰트를 적용했고, 배달의 민족 애플리케이션 역시 자체 글씨인 한나체와 주아체를 적용, 온라인을 통해 무료로 배포했다. 너무 촌스러워서 오히려 보는 이들의 주목도를 높이는 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경영자의 마인드로 일할 테니 경영자의 월급을 주세요~썅~

위와 같은 말을 상사 앞에서 대놓고 한다면? 물론 실천은 어렵겠지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막혔던 속이 탁 트이는 것 같다. 2016년 서점가는 직장인들의 마음에 통쾌한 한방을 선사하는 책들로 활기를 띄었다. 일본인 저자 히노 에이타로의 <아 보람 따위 됐으니 야근 수당이나 주세요>는 업무에 시달리는 직장인들의 지지를 받고 발행 2주만에 4쇄를 찍으며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 사축일기,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 처럼 고단한 직장생활을 풍자한 위트 있는 제목도 눈길을 끌었다. 몇년전까지만해도 직장인을 겨냥한 서적은 CEO처럼 일하면 성공한다는와 같은 메세지를 담은 자기개발서가 대부분이 었다. 


어울리지 않는 것들을 함께 배치함으로써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부조화 역시 2016년 다양한 영역에서 활용 됐다. 부조화를 가장 잘 활용한 영역은 단연 식품 부분이었다. 2016년 신조어로 등극한 단짠단짠은 달고 짠맛을 번갈아가며 먹는 방식을 의미한다. 식품업계에서는 단짠을 활용한 신상품을 경쟁적으로 선보였다. 프링글스는 짭짤한 감자침에 달콤한 캐러멜을 더한 신제품을 빙그레 끌레도르 아스크림은 천일염과 캐러멜 맛을 접목한 솔티드 캐러맬을 출시했다. 맥도날드 역시 솔티드 캐러멜 와플콘을 출시해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 잡았다. 포테토칩 짜왕,포테토칩 맛짬뽕맛 처럼 자사과자브랜드에 라면브랜드를 섞어 도전적인 맛을 선보였다.


2016년 광고업계에서도 부조화는 적극적으로 차용됐다. 2016년 신규광고에선 전혀 예상치 못한 인물이 등장했다. 우락부락한 인상으로 그동안 영화에서 다소 거친 역할을 맡았던 마동석 씨가 대중과 호응하는 자리에서 보여준 외모에 걸맞지 않는 귀여운 모습에 마블리, 마쁜이란 별명으로 인기를 끌자 화장품 모델로 전격 발탁 된 것이다. 근육질 몸매에 분홍색 앞치마를 두르고 공손하게 고객을 응대하는 마동석씨의 광고 속 모습은 어색하지만 왠지 호감가는 새로운 이미지로 대중에게 어필 했다.


분위기 깡패, 음원깡패, 마약김밥, 발암캐릭터, 마스크팩성애자, 2016년 사람들이 즐겨 사용하는 단어에는 유난히도 극단적인 표현이 많았다. 자극의 역치가 높아진 사회에서 극단적인 접두어나 접미어를 사용해야만 비로소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를 속 시원하게 전달 할 수 있을 거라는 대중들의 속내가 역으로 두드러지는 상황처럼 보인다.


문화 콘텐츠 부분에서는 19금의 야한 웹툰은 물론 이고 살인, 장기매매등 범죄물을 소재로 한 잔인한 웹툰의 수요가 증가하는 현상이 두드러졌다. 신한카드 트렌드연구소가 자사 카드 보유자를 대상으로 빅데이터를 분석 한 결과, 국내 대표 성인 웹툰 플렛폼 3사의 이용건수는 2016년 상반기 기준으로 전년 동기 대비 약 2배이상 증가 했다. 2016년 잔인하고 유치하고 솔직한 것들을 적나라하게 추구하는 원초적 본능 트렌드는 역설적이게도 우리가 마주한 현실이 얼마나 엄혹한지를 보여 준다.


극단적인 촌스러움은 지속적으로 불고 있는 복고 바람과 함께 향후 메가트랜드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 현재는 단지 세련됨의 반작용으로 나타나는 의도적인 촌스러움이지만, 이것이 발전되면 고급화된 빈티지로 성장 할 수 있다.


극단성의 반대 방향에는 착함이 자리한다. 2016년 상반기 음원시장의 1,2위는 힘을 내라는 메시지를 담은 트와이스의 <치어업>과 거친 세상 속에서 손을 잡아주겠다는 여자친구의<시간을 달려서>가 각각 차지 했다. 이른바 착한 아이돌이이 주목받은 것이다. 다소 거칠지만 유쾌했던 원초적 본능 트랜드의 핵심은 솔직함 그 자체이다. 어떤 상황에서든 무조건 할 수 있다고 외치는 과거 성장기 시대의 주문을 외우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할 수 없겠다 거나 굳이 하고 싶지 않다는 새로운 시대의 솔직한 자기 고백이야 말로 핵심 가치가 된다.

그리고 하나의 답이 아니라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비롯될 것이다. 불편하지만 마주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위트 있고 솔직하게 맞선 원초적인 본능 트렌드가 앞으로 어떻게 변주 될지 그 귀추가 주목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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